늦깎이 게임 개발

자리에 앉기도 전에 키보드의 윗방향키를 누른다. 특별히 그 키를 눌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새 습관이 됐다. 부스스 절전모드에서 깨어난 컴퓨터가 신원 확인을 요구한다. 빈 칸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나면 작업 중이던 화면이 떠오른다.

40대가 되어 여가시간을 활용해 무언가를 한다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 좀처럼 여가시간이 생기질 않는다. 때문에 틈이 날 때마다 절전모드로 잠든 컴퓨터를 깨운다. 그렇게 쪼개진 10분을 작업에 쓴다. 예전처럼 집중해서 작업할 시간이 없다. 평일엔 회사에 출근해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늦은 저녁을 먹은 후 설겆이를 하고,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밀린 빨래를 개고 나면 어느덧 잘 시간. 잠깐 핸드폰으로 밀린 문자를 확인할 틈도 없다. 그렇게 쓰러지듯 잠들고 나면 다시 아침이다. 그나마 주말은 좀 낫지만, 아이가 계속해서 작업을 방해하기 때문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컨디션이라도 안좋은 날이면…그래도 시간은 무정하게 천천히 미래를 삼킨다.

그렇기에 육아를 하며 게임을 만든다는 건 욕심이다. 부모님의 건강도 예전같지 않다. 문득 30대시절이 떠오른다. 누군가를 돌보지 않고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던 시절. 퇴근 후 피곤하면 쇼파에 누워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있던 때였다. 몸도 더 건강했으니 더 많은 걸 했다면 좋았을텐데. 후회는 망상으로 치닫고 슈퍼스타가 된 자신의 미래를 그린 후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어차피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행동할 거면서… 내가 날 모를까.

그래서 늦게나마 욕심을 좀 부리고 싶어서 최근에 회사 출근일을 대폭 줄였다. 이미 작년부터 주3일만 출근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아예 1일로 줄여 계약을 했다. 배틀퀸 작업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전작업은 모두 새로 입사한 애니메이터와 TA가 나누어 이어받았다. 1일을 남겨둔 것은 내가 짜놓은 작업 파이프라인에 균열이 생길경우에 대한 일종의 보험이다. 물론 월급도 그만큼 줄었다. 이제 주변인들은 날 백수로 본다. “너 시간 많잖아.” 그들은 내가 회사를 나가는 대신 집에서 작업을 붙잡고 있는 그 순간이, 월급이라는 큰 돈을 포기하고서라도 얻고 싶었던 간절한 시간이었음을 알지 못한다. 어차피 이해받기도 설득하기도 어려우니 그냥 웃고 넘긴다. 좀 손해보고 살지 뭐.

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벚꽃이 지고 있다. 좋지 않은 자리임에도 기어이 꽃은 핀다. 순서의 차이일 뿐,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는 교훈으로 받아들이면 좋을까. 아이들이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손을 뻗는다. 벌써 신록이 푸른 봄의 한중턱에서, 늦게 핀 벚꽃이 어둡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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