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25.7.8)

오른쪽 눈이 충혈됐다. 두 달 쯤 된 것 같다. 병원에 가니 결막하출혈같으니 약을 써보라고 해서 2주간 치료를 했으나 나아지지 않았다. 별 수 없이 시간을 보내다 다른 병원에 갔더니 이번엔 상공막염이라고 한다. 인터넷 사진을 찾아보니 이게 맞다. 돌팔이 의사 때문에 죄없는 눈에 괜히 스테이로드만 잔뜩 때려부었네. 난생 처음듣는 병명에 새로운 소염제와 스테로이드를 처방받았다. 하지만 스테로이드는 부담이 돼서 소염제만 썼다. 의사도 스테로이드는 권하지 않았다. 처음엔 효과가 있는 것 같더니 다시 번진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인터넷에서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는 자들의 글을 보니 상공막염은 완치가 힘든 병이다. 발병의 원인도 모르지만, 한 번 발병하면 꾸준한 관리 외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증상은 약하기 때문에 눈이 그냥 빨갛게 충혈될 뿐 아프거나 시력에 영향이 있지는 않다. 다만 남들이 보기에 굉장히 피곤해 보일 뿐이다. 피곤한 상태에서 쪽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처럼 눈이 빨간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부시스템은 멀쩡하다. 엄살떨기 좋은 병이다.

두 달 정도 이 병을 달고 살다보니 면역력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면역력은 수면과 관련이 있다. 최근에 수면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난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잠이 부족해도 내 몸은 움직였고, 지금까지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안일한 생각 속에 살았다. 하지만 이제 나도 늙었다. 난 이 눈병이 내 몸의 적신호를 강렬하지만 상냥한 방법으로 내게 알려주는 경고같이 느껴졌다.

평시엔 회사에서 10시간을 보낸다. 9시 반~6시 반. 출퇴근에 3시간을 사용하고, 자는데 8시간을 쓴다고 치면 21시간을 내 의지대로 사용할 수 없다. 남은 시간 3시간 중에 집안일과 육아를 빼면 1시간 정도가 남는다. 이 1시간동안 취미생활을 할 수 있다. 내겐 이 취미가 배틀퀸의 개발이었다.

하지만 게임개발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잠을 쪼갰다. 적어도 3시간은 작업해야 무언가 볼만한 게 나온다. 그래도 주말에는 좀 오래 잘 수 있으니까… 습관이 되니 6시간만 자도 그럭저럭 견딜만해졌다. 하지만 회사에서 크런치라도 하게 되면 이 1시간마저 사라진다. 집에 와서 잠을 자고 나면 바로 다시 회사에 나가야 한다. 다시 시간을 쪼개자. 주말에 몰아서 자면 괜찮겠지… 하지만 아무래도 무리였나 보다. 내 오른쪽눈에는 기어이 경고등이 켜지고야 말았다.

몸이 망가지는 건 한 순간이다. 난 이 경고를 무시하지 않으려고 한다. 당장 회사일이 바쁘니, 취미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

근황 (25.7.8)”의 18개의 생각

  1. 요즘은 정말 하루가 30시간은 되었으면 좋겠어요.

    취미로 블렌더를 하고있는데 슬슬 정체됨이 느껴지네요

    퇴근하고 드러눕고… 휴일은 너무 적고…

    성장엔 꾸준함이 필요한 걸 모르는 것이 아닌데, 그렇다고 밥벌이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책임져가며 해야하는 일과 단순히 즐거움을 위해 하는 일의 대치이니 어쩔수없이 취미의 비중이 적어지는것이겠죠

    게임만 해도 진득하게 붙잡는 RPG가 아닌, 하루 5분,10분만 투자해도되는 관상용 서브컬쳐같은것만 찾구말이죠…ㅎ….

    건강이 제일입니다 이즈님

    그냥 눈만 충혈되는 증상이라도 경계는 하셨으면 합니다.

    건강해야 취미도 결국 오래동안 즐길 수 있더군요

    당분간은 배틀퀸 제작자가 아닌, 한 블로그 주인장의 근황을 보러 들르는게 되겟네요

    1.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하지만 별로 큰 일은 아니예요. 방치하면 큰 일 되겠지만, 그냥 피로가 쌓여서 그런 거라 잘 쉬면 괜찮아집니다. 그래서 잘 쉬려고요!

      하루가 30시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헤르미온느에게 한 수 배우고 싶네요.

  2. 지금 하신 고생이 좋은 결실을 맺길 바랍니다.

    한시간 정말 짧죠.

    저는 얼마전에 기러기를 한시간이나 봤습니다.

  3. 드래곤볼 Z에 나오는 그 이상한 시간의 방에서 자보는 건 어떠세요? 엉뚱한 농담은 제쳐두고, 게임 개발만큼 힘들지 않으면서도 재밌게 놀 수 있는 취미나 다른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요. 제대로 쉬는 것도 중요하지만, 뭔가 즐기고 쉴 수 있는 것도 있어야 해요. 책 읽기, 드라마 보기처럼 간단한 것도 좋고요. 일과 휴식뿐 아니라 자신을 위한 시간도 가져야 해요. 더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요.

    1. 죄송합니다. 이전 메시지는 잘못 전달되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일하고 쉬는 것을 반복하는 대신, 자신을 위한 활동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건 알지만, 그럴 때는 즐거운 일을 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즐거운 시간도 중요하죠.

      1. 충분히 잘 전달되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전 게임을 2개 만들고 있는 셈이예요. 다른 점은 한 쪽은 회사일이고, 한 쪽은 제 취미죠. 배틀퀸을 만드는 것이 제겐 휴식같은 일이예요. 그것이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기에 다른 일은 거추장스러운 의무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 이게 여행이나 영화를 보는 일보다 훨신 더 재미있어요!
        하지만 이걸 건강을 희생하면서까지 할 수는 없죠. 건강이 최우선입니다!

    2. 실제로 [정신과 시간의 방]이 있었다면 아마 떼돈을 벌었을 거예요. 현대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죠!

  4. 젊음은 권리가 아니라 스쳐지나가는 선물이었다는 감상이야.
    뭔 짓을 해도 끄떡없을거같던 믿음이 꺾이는 시기가 대략 지금 즈음이 아닌지
    비슷한 고민을 여기저기서 듣곤 해. 알다시피 나도 병이 조금 일찍 찾아왔었고
    그 덕에 인생행로가 많이 바뀌었었지. 당시엔 저주라 여기며 이를 갈았지만;; 또 배움이
    생기는 아이러니함?
    자가 면역 질환이 참 웃긴게 죽을병은 아니라고 하는게 많더라. 그런데 삶의 질은 또
    어지간한 중병만치 갉아먹힌단 말이지…
    평생 끌고 다닐 차(몸)를 한대씩 받아서 사는데 저마다 연비도 성능도 다르고 중간에 바꿔탈수도 없지.
    몸이 나라는 생각보다는 평생 관리해서 타고 다닐 소중한 무엇이라 여기고 잘 관리하셔서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자네 작업물 보는 맛도 각별하지만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에 비할까?

    1. 나이드니 슬픈 일밖에 안남는다. 창문밖으로 뛰쳐나간 노인은 소설에나 나오는 얘기같아. 죽음을 마주한 상태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지만 요 며칠새 잠을 잘 잤더니 눈은 제법 회복이 됐어. 아직은 좀 빨갛지만, 어쨌거나 몸은 정직하다는 걸 느낀다. 어쨌거나 자네도 건강챙기시게. 잠이 보약이라는 말은 너무 오래들어서 상투적으로 느껴지지만, 최근엔 절실하게 들리고 있어.

      1. 복지관에서 구순노인이 칠순노인을 갈구는걸 본적이 있습니다.
        ‘에잉~~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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